처음들어본듯 하지만 음악은 들어본 그분

 

에드바르 그리그

 

 

www.youtube.com/watch?v=kLp_Hh6DKWc

어디서 많이 들어본 그 곡 - 산왕의 궁전에서 (In tthe Hall of the Mountain King)

 

www.youtube.com/watch?v=-rh8gMvzPw0

어디서 많이 들어본 그 곡 2- 아침의 기분(Morning Mood) 

 

위의 두곡 "산왕의 궁전에서"와 "아침의 기분" 모두 "페르 귄트" 라는 입센의 희극을 위해 쓰여진 곡이다.

 

이외에도 페르 귄트를 위해 쓰여진 곡들중에는 우리가 어디선가 들어본적 있는듯한 곡들이 꽤 많다...

 

 

 

 

 

 

 

일단 더 들어가기에 앞서 아래곡을 배경삼아 시작하자

 

 

 

 

www.youtube.com/watch?v=Qd_rPGzmw3g

"연주 금지"

 

 

 

에드바르 그리그 (6월 15일 1843년 – 9월 4일 1907년)

 

 

노르웨이의 국민악파... 민족주의 음악가..

 

핀란드의 시벨리우스나 보헤미아(오스트리아-헝가리 -> 체코)의 스메타나 같은(이 두 작곡가들도 언젠가 다룰기회가..)

 

노르웨이의 음악을 세계에 알리고 민족성을 크게 발전시키는데 공여했다.

 

 

 

그리그의 곡들 중 꽤 흥미로운 곡이 하나 있는데 

 

바로 지금 듣고 있을, 그리그가 몇번 연주시키지도 않고 다시는 연주 되선 안된다고 금지시킨후

 

실제로 100년 넘게 온전하게 연주된적이 없는  ............(작곡가를 존중하는 마음이 너무 깊다) 

 

교향곡 다단조 EG 119 (Symphony in C minor, EG 119) (1863-64?)이다.

 

 

 

150년 정도 되서 그런가.. 잘안보인다..  "Må aldrig oppføres"

 

 

위 사진은 교항곡의 원본 악보 표지이다. 

 

노르웨이어로 "Må aldrig oppføres"

번역하자면 영어로 "Must never be performed"

한국어로는 "절대 연주하지 말것" 내지는 "연주 금지"라고 쓰여있다 .....무슨 악마의 노래도 아니고 이사람아ㄷㄷ

 

 

베르겐 공공 도서관(The Bergen Public Library)은 이 악보를 내내 보관해놨다가 1981년은 되어서야 모든 악장이 연주 될수있도록 공개했다 ....

 

 

 

 

 

곡을 들어보면서 어떤 감상이 드는가?

 

 

 

개인적으론 그냥 어디서 많이 들어본 교향곡 느낌...?(아마 오스트리아 또는 독일 느낌? 아무래도 거기서 공부했으니..),

그냥 그저 그런 평범한 교향곡?(물론 내가 뭘 알아서 평이 박한건 아니다..)

아무래도 19세기의 교향곡이라기엔 심심한부분이 없지않다...

 

실제로 매우 초창기의 그리그는 멘델스존의 음악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사실 1~2악장은 다른 교향곡들도 그런 느낌이 나기는 한다..(나만 그럴지도...........) 아무래도 형식상 신나지가 않아.....ㅠㅠ

 

 

 

 

그리그는 이곡의 작곡을 마무리한 1864년경 이제 막 20세? 정도 되었을 것이다..

 

청년의 넘쳐나는 열정으로 써내려간 교향곡이 뭐가 마음에 안들어서 이곡을 100년 넘게 연주되지 못하게 한것일까...

 

 

 

 

 

이제 위 영상을 3악장 Allegro energico 시작되는 영상의 20분 04초로 넘겨버리고 감상해보자

 

 

산과 강과 바다, 노르웨이의 정취가 조금은 더 느껴지는듯하다

피날레인 4악장에서도 그 활기찬 기상이 이어진다. 

 

 

 

 

노르웨이의 풍경 (노르웨이는 서쪽은 바다 동쪽은 스칸디나비아 산맥으로 풍부한 자연경관을 보유하고있다)

 

 

 

 

 

독일 유학시절일듯 라이프치히에서 에드바르 그리그(왼쪽, 소년소년하다) 형 존 그리그(오른쪽) (1860)

 

 

 

 

에드바르 그리그 ..아인슈타인과 닮은꼴로도 유명하다. 정확히 따지면 아인슈타인이 그리그를 닮은것..

 

 

 

 

 

 

 

이 교향곡을 작곡할 당시 그리그는 코펜하겐에 머물며 이제 막 본인만의 색깔, 본인의 음악적 성격을 찾아가던 시기이다.

 

 

1864?년, 거기서 그리그는 동향의 노르웨이 작곡가 리카르드 노르드라크(Rikard Nordraak 1842-1866)를 만나게된다.

(원어 노르웨이 발음은 리카ㄹ 노랔ㅋ에 가까운듯)

 

 

국내에선 워낙 인지도가 떨어지는 분이라 발음조차 통일이 안되있긴한데..

 

 

무려 노르웨이의 국가 "그래, 우리는 이 땅을 사랑한다" (노르웨이어 "Ja, vi elsker dette landet")의 작곡가이시다..

 

 

 

그리그를 만나기전 Rikard Nordraak 독일 베를린에서.. (1862)

 

 

 

 

이때 그리그는 리카르드의 영향을 받아 그동안의 서정적인 성향을 내려놓고 노르웨이 국민악파로서의 모습을 찾아간다..

 

두 친구는 코펜하겐에서 Euterpe라는 노르웨이 음악가 협회까지 만들면서 노르웨이의 음악의 정체성을 찾고자 했다.

 

 

 

 

그런 상황에 그리그는 아마 독일 유학생활의 영향이 듬뿍 들어가있던 그 교향곡이 무던히도 맘에 안들었을것이다.

 

당시의 그리그에게는 자신의 교향곡에서 본인의 치기가 느껴졌을지도 모른다.(일반인이 볼땐 충분히 훌륭하긴 하지만..)

 

 

 

그렇게 그의 교향곡은 역사속에 묻혀 100년 넘게 연주되지 못했다...

 

 

물론 자세한 이유는 그리그 본인만 알것이다.

 

하지만 생전에 충분히 연주금지를 철회할수 있었슴에도 그렇지 않은것은

노르웨이의 민족주의 음악가로서의 어떠한 강단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후의 이야기...

 

타지에서 만난 두 청년 그리그와 리카르드는 아마 서로 의지하며 매우 가깝게 지낸 사이였으리라..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 1866년... 리카르드는 결핵으로인해 23세의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그리그는 리카르드를 위해 피아노 연주곡을 하나 쓴다....

 

www.youtube.com/watch?v=hVXAWsTHD40

리카르드 노르드라크를 위한 장송행진곡(Sørgemarsch over Rikard Nordråk, EG 107) (1866)

 

 

가만히 듣고 있자면 꽤나 많은 감정이 실려있는듯 하다..

 

 

 

 

 

그리그는 이 곡을 정말 많이 아꼈으며

 

훗날 본인의 장례식에 최상의 음악으로 연주되기 원한다는 유지를 따라("as best as possible")

 

그리그의 또 다른 친구인 요한 할보르센[Johan Halvorsen (1864~1935)]의 관현악판이 마지막 떠나는길을 장식한다.

 

 

www.youtube.com/watch?v=ZJi_rb9D8I4

Sørgemarsch over Rikard Nordråk arranged by Johan Halvorsen

 

 

 

 

 

 

 

 

진짜 마지막으로 뒷이야기

 

사실 그리그는 생전인 1899년 이곡의 orchestration을 마쳤지만 장례식에서 악보에 맞는 충분한 관악기 주자들을 구할수 없었다..

 

결국 요한 할보르센이 급히 편곡함으로써 무사히 "가능한 최상으로" 연주될수 있었다.

 

 

 

 

 

 

 

 

 

 

 

 

 

 

 

 

 

 

 

과제 리포트도 이렇게 마음대로 쓸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꺼무위키 에드바르 그리그 문서가 2017년 12월부터 "이 때 즈음에 그리그는 훈장을 많이 받았는데 그는 “훈장은 정말 쓸모 있는 물건이야. 여행가방 위에 훈장을 올려놓으면, 세관원들이 친절하게 대해준다네.”라고 비꼬는 말을 남길 정도로 별 가치를 두지 않았다." 라는 말도안되는 서술이 약 3년간(.....) 방치되있던걸 원 출처 찾고 고치기 위해 온갖 해외 학술지와 고전도서를 뒤져보았다 ... 작품 이외의 부분은 정말 너무 연구가 없더라ㅠㅠㅠ 아직 학생신분이라 온라인 도서 관람이 조금은 더 용이한게 다행이고 꺼무위키가 꺼무위키했다 ....(3년은 너무하잖아..어쩌다 사람을 괴짜로 만들다니..)

 

##영국 왕립 음악 협회장을 맡은적이 있는 음악학자 Gerald Abraham의 책 Grieg: A Symposium (1948)에서 그리그는 온화하고 겸손한 성격이었으며 어딜가든 환영받는 유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위의 발언을 실제로 한것은 맞지만 그 배경은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내용중으로 "이런 귀한걸 받아서 기쁘긴 한데 뭐 이런걸 다 준다는건지 원ㅎㅎ 어쨌든 준다니 받아야지, 꽤 쓸모가 있거든" 라는 식의 가능한 겸손하고자 했던 그리그의 자랑아닌 자랑으로 농담섞인 발언이라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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